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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나 아십니까? 고구려왕의 계보
    카테고리 없음 2021. 11. 10. 17:43

    고구려 왕의 계보를 얼마나 알아요?

    여러분은 한반도의 역사를 배우시면서 고구려라는 나라를 배우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알고 계신가요?

    저는 고구려가 한반도 역사에서 대표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강대한 나라라고 기억합니다. 대대로 정복 정책을 펴온 고구려는 여러 외부 세력의 침략을 격파하는 등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 왕의 계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고구려 왕의 계보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도 공부하면서 드라마에서 자주 보았던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먼저 떠올릴 겁니다.

    혹은 시조 주몽만큼 유명하고 정복자라는 이미지가 강한 광개토대왕 담덕과 그의 아들 장수왕 등을 가장 떠올리기 쉬운 왕입니다.

    하지만 그 외의 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먼저 고구려왕 계보를 알아보기 전에 고구려라는 나라가 어떤 나리인가를 먼저 한번 알아보고 시작하겠습니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연도가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사학계에서는 고구려가 실제 알려진 것보다 100~200년 전에 건국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먼저 건국된 신라가 고구려보다 훨씬 후진국으로 그려져 있고, 광개토대왕이 추모왕의 12세손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17세손이라는 기록이 발견되었거든요.

    고구려가 처음 건국될 당시에는 도읍이 지금의 중국 나오령성 환인시인 졸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몽의 아들인 유리왕 때에 수도를 위라암성으로 옮겼습니다.

    이 위와 암성이 수도가 되면서부터는 장수왕이 다시 도읍을 옮길 때까지는 줄곧 고구려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우리가잘알고있는국내성이바로이곳일겁니다.

    지금의지명으로는중국지안시통구현이라고불리고있습니다. 장수왕이 왕위에 오른 뒤 천도한 도읍지는 평양성이라고 합니다.

    고구려의 단편적인 부분들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고구려왕의 계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의 계보는 알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왕의 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명성왕 > 유리왕 > >> 대무친왕 > 민중왕 >>>> 모본왕 > >> 태조대왕 >> <<신대왕 > 신대왕 > 중천왕 > 서천왕 > 봉상왕 > 미천왕 > 고국원왕 > 소수림왕 > 고국양왕 >>

    이렇게 해서 총 28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주요 업적이나 사건의 중심이었던 왕도 있습니다만, 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은 누구나 아는 왕이에요. 설화에서는 알에서 나온 인물로 묘사되지만, 출신자가 부여로 성을 고씨로 바꾼 것은 고구려를 건국한 이후의 일이랍니다.

    당시 고구려는 중국과 부여 등 주변 국가들과의 분쟁을 자주 일으켰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정벌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주몽의 손자인 대무신왕 때 부여 대소왕을 죽여서 정벌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대무신왕이 주몽의 직계인가에 관한 점입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대무신왕이 선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위서의 고구려전에는 내용이 다릅니다.

    여월이 죽자 아들 여을이 대를 이어 즉위하였다. 여울이 죽자 아들 마크레가 즉위하고 부여를 합쳤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여기에서 여월은 유리왕이고 막래는 대무신왕이라는 기록이 있어요. 즉, 유리왕의 손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요.

    정복의 역사를 써 내려간 고구려의 힘은 그만큼 막강한 것이었지만 그 힘도 16대 고국원왕대에 이르러 점차 약해졌습니다.

    후한 멸망 이후 서진이 중국을 통일하는데, 이 서진이 혼란한 시기에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이 옛 고조선의 영토로 고구려의 영토를 넓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연이라는 사족이 세운 나라가 생겨 고구려를 침략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고구려는 큰 수모를 당했다고 해요.

    타이밍 좋게 백제가 국력을 키웠고 고구려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결국 고국원왕은 백제 근초고왕이 이끄는 군대에 맞서다 전사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는 멸망 직전까지 갔지만 그런 나라를 다시 세운 것이 소수림왕이었어요. 태학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문치주의와 법치주의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나라를 더욱 안정시키기 위해 불교를 공인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백제에게 당한 굴욕에 복수의 칼날을 꺼내 수곡성을 공격해 빼앗았죠.

    소수림왕이 나라의 기특함을 굳게 다잡았기 때문에 광개토대왕과 그의 아들인 장수왕이 국력을 높여 다른 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은 고구려의 실력자 연개소문이 반란을 일으켜 그를 업고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보장왕은 실권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대에는 연개소문에게 휘둘리기만 했던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 후에는 오히려 고구려 부흥운동 등의 업적으로 인해 제 역할을 한 왕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어쨌든 고구려는 보장왕을 끝으로 나당연합군에 패배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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